1. 트럼프 정부 2기의 경제국수주의와 달러 헤게모니의 경직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관세정책의 귀환을 의미한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 정부 2기는 글로벌 무역질서보다는 양자협상을, 자유무역보다는 전략적 관세 압박을 선호하는 전통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는 공급망 탈중국화 전략의 연장선으로, 미국 내 제조업 리쇼어링을 유도하는 조치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이 관세정책을 통해 달러 패권을 간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는 단순한 무역장벽이 아닌, 국제 달러 수요의 구조적 재편을 유도하는 지렛대다. 글로벌 기업이 대중국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달러 기반의 결제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미국 자본시장의 강세, 달러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계 통화질서의 긴장과 분열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2. 중국의 전략: 위안화 국제화와 디지털 인민폐의 확장
중국은 트럼프의 관세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은 ‘달러 탈중심화’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제재와 금융전쟁 가능성에 대비해 위안화 국제화와 디지털 위안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동아시아 중심의 다극적 통화질서를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특히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참여국들과의 무역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을 높이고, 원자재 수입 시 위안화 결제를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위안화 기반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로서 디지털 위안의 실험을 통해, 미국의 SWIFT 기반 금융제재 리스크를 우회하려는 전략도 병행 중이다. 디지털 위안은 단지 기술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금융패권의 취약지대를 노리는 ‘통화전략무기’이기도 하다.
3. 통화전쟁의 신국면: 달러 유동성의 무기화와 글로벌 남반구의 이탈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 강화될수록, 신흥국 중심의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는 중·장기적으로 달러 유동성의 위협을 실감하게 된다. 관세로 인한 교역 축소는 달러 유입 경로를 줄이고, 미국 금리 인상과 맞물려 신흥국 통화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는 결국 ‘달러 부족(dollar shortage)’ 현상으로 귀결되며, 기존 달러기반 질서에 대한 신흥국의 불만과 이탈 움직임을 촉진한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BRICS+ 체제를 중심으로 ‘비달러 결제망’ 구축을 추진하며, 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에게 인프라 투자와 함께 위안화 결제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전략이 아니라, ‘달러 없는 세상’을 실험하는 대안적 블록 형성 시도다. 특히 러시아, 이란과 같은 미국 제재국들과의 협력은 달러 중심 결제시스템(SWIFT)의 균열을 상징한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식 경제민족주의가 오히려 달러체제의 해체 가속화에 기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4. 글로벌 투자자 관점: 달러 강세와 위안화 리스크의 이중주
국제 금융시장은 이러한 구조적 전환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관세 충돌이 격화될수록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며, 단기적으로는 달러화가 강세를 띠기 쉽다. 그러나 이는 ‘강한 달러’가 아닌 ‘불안한 달러’의 반사적 상승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위험을 내포한다. 특히 중장기적으로는 달러금리의 고착화와 글로벌 유동성 위축이 기업 투자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위안화는 점진적인 국제화를 추진 중이나, 여전히 폐쇄적인 자본통제와 정치 리스크로 인해 글로벌 기축통화로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위안화 확장에 기회와 리스크를 동시에 인식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에서 달러와 위안 사이의 미묘한 균형조정이 발생하게 된다.
5. 결론: 달러의 정치화, 통화질서의 분화, 그리고 새로운 패권 경쟁
트럼프 정부 2기의 관세정책은 단순한 무역압박을 넘어, 세계 통화질서를 재편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통해 전략적 탈세계화를 추구하면서 달러 유동성을 정치적 도구로 무기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맞서 디지털 위안과 위안화 결제를 통한 ‘자율경제권’ 형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는 달러 중심의 통일된 통화질서에서 벗어나, 다극적이고 분화된 금융지형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자자에게는 이 변화가 ‘달러 강세의 끝’이 아닌 ‘달러 체제의 균열’을 의미하며, 이는 새로운 글로벌 통화질서에 대한 이해와 포지셔닝을 요구한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의 기축통화이지만, 더 이상 무조건적인 신뢰의 수단은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단기적 승리를 이끌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가 지키려는 달러 패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중국은 이를 놓치지 않고, 경제가 아닌 통화에서 새로운 패권 경쟁의 불씨를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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